여행 이야기/2015 가을 필리핀 (바기오-클락)

2015년 가을, 필리핀 바기오 여행 이야기 04 (태풍에서 살아남기 2편 - 쿠이산)

트레비앙 2016. 9. 5. 15:08

태풍이 온다면 우리에게는 어떤 변화가 일어나게 될까?

나는 마냥 집에서 기다리고 있고, TV를 벗삼아 지내는 삶을 상상했었다. 전원주택에 산다면 아마 쓰러져가는 텃밭의 작물들을 보면서 한숨을 쉬는 정도가 추가되지 않았을까..?

 

 

(태풍 란도가 휩쓸고간 저지대의 모습…)

 

역시 사람은 경험을 해봐야 안다고..그 모든 나의 고민은 참 럭셔리한 고민이었다는 걸 깨닫는데 까지는 채 하루가 넘게 걸리지 않았다.

 

 

(바기오 기상상황정말 재대로 태풍을 맞고 있었다..사진출처: 사진속에)

 

1차적으로 정전이 되었다는 것은, 전기를 사용하는 모든 제품의 사용이 불가능 할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그 말인즉슨…… 휴대용 전자용기의 충전, 불빛만이 아니라 전기를 기반으로 돌아가는 온수기의 사용도 멈추게 되었다는 것……

 

세수나 손 닦기, 발 닦이 정도야 물론 찬물로 해도 크게 상관이 없었다. 하루 1-2회 샤워를 하고 머리를 감는 것, 그것마저 한기가 드는 태풍철에(+ 바기오 날씨는 서늘한 편이라 더욱 더 한기가 든다는 것) 그렇게까지 괴로울 수 있는지 몰랐다.

 

물론 첫날에는 낮에 찬물로 샤워도 하고 머리도 감았었지만그게 태풍 후 나의 신상에 크나큰 변화를 일으키게 될 줄은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그렇게 하루하루 보내던 어느 날, 우리는 목욕을 위한 원정을 떠나게 된다. 제네레이터가 있는 호텔의 샤워시설을 이용하기 위해서

 

 

(우리의 구세주 쿠이산호텔! 사진출처: 구글이미지)

 

당시 숙박할 수 있는 호텔을 제외하고 따뜻한 물로 사워를 쾌적하게 이용할 수 있는 곳은 두 군데가 있었다. 캠프 잔헤이에 위치한 사우나 시설, 그리고 쿠이산 호텔의 헬스장(에 딸린 샤워시설). 잔헤이에 있는 사우나의 경우, 클럽멤버들만 이용할 수 있고 가격부분에서 훨씬 비싼데다가, 거리상으로도 먼 단점이 있었다.

 

숙소 건물에 살고 있던 한인 대학생이 쿠이산 호텔에 위치한 헬스장에 다니고 있었는데, 하루권을 끊고 들어가면 샤워시설을 사용할 수 있다는 꿀팁을..(게다가 사우나도 있다고..)주어서 우리는 그녀(+그녀의 무리들)와 함께 목욕용품을 챙기고 쿠이산 호텔로 향했다.

 

 

(태풍덕에 헬스장 안에는 트레이너들만 보이더라는…)

 

쿠이산 호텔에 도착하여(물론 전기가 들어오는 곳이었으므로 멀티탭+충전기도 함께 원정에 동참) 헬스장에서 1일권을 끊고(프로모션으로1인당 200페소였다. 따뜻한 샤워 + 사우나시설 이용에 나쁘지 않은 가격.) 쿨하게 운동하는 사람들을 지나쳐서 우리의 목적지인 샤워장으로 향했다.

 

 

(여자샤워실 내부, 왼쪽은 샤워시설, 오른쪽에는 세면대+콘센트가 있다.)

 

뜨거운 물이 나온다고 해서 아주 뜨거운 물이 아주 콸콸 나오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전날 나는 찬물에 샤워하면서 고통을 맛봤던 터라 그 따뜻한 물마저도 감사했고, 찝찝함을 씻어낼 수 있다는 것에 만족했다. 핫워터와 사우나 사용 시간이 제한되어 있어서 조금 서두르긴 했어야 하지만 태풍 덕에 헬스장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고, 여자 샤워장에는 우리밖에 없어서 이용이 좋기도 했다. 과다전기 사용으로 가끔 정전이 되기도 했는데 제네레이터의 위력인지 몇 분만에 다시 전기가 들어왔다.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한 것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드라이기를 사용해서 머리를 다 말리고 올 수 있었다는 것과 전기에 배고파하는 전자기기들을 샤워시간 동안 충전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 좋았다..

 

사람은 역시 궁해져야 감사함을 느끼는가보다.

 

 

(생필품 사러 Pure Gold 마켓에 온 사람들)


샤워를 마치고, 쿠이산에 위치한 Pure Gold 슈퍼마켓에서 이것저것 장도 보고신선한 생선류 일부를 제외하고는 물건들이 꽉꽉 들어차 있었다. 하지만 몇 일 전 들렸을 때보다 계산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었다.

 

샤워도 산뜻하게 했고 태풍이 영향권을 곧 벗어날거라는 소식에 자축파티나 하는건 어떨까 싶어서 같이갔던 일행들과 슈퍼마켓에서 주전부리(+맥주)를 사들고 가볍게 들어왔다.

 

 

(특이한 안내문..여기가 정말 필리핀인가 싶었다.)

 

독특했던 점은, 호텔 내 문에서 발견한 이 안내문왜 호텔에서 이용시간을 제한할까 생각해봤는데 아무래도 답이 나오질 않았다. 알고 보니 쿠이산 호텔에 어학원이 있었던 것..주로 연수를 오는 학생이 한국인과 일본인 인가보다. 학원이 호텔 내에 위치하면 숙박도 그렇고 마트, 헬스장 이용에 용이하긴 할 것 같다. 바기오가 스파르타 어학연수로 유명하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곳곳에서 한국어를 찾아보는게 어렵진 않았다. 유명하다는 건 그만큼 한국사람이 많이 온다는 뜻이니까..

 

 

숙소에 돌아와보니 다행히 인터넷이 되기 시작,

전기도 돌아왔지만 다시 나가버릴 수도 있어서 일단 다들 급한 비상용품(랜턴 등등)을 충전하고 계셨다.

 

 

(페이스북에 올라와있던 사진…)

 

그리고 페이스북에 접속해서 접한 놀라운 사실..

SM 몰의지붕이 통째로 날아갔다는 소식…강풍에 지붕이 통째로 날아가는 덕에 폭우가 그대로 몰 내로 들어가게 되었다는그리고 바기오 저지대의 침수사진이 공유되기 시작했는데 같은 도시인가 싶을 정도로 모습이 달랐다. 만약 우리가 저지대에 묵고 있었다면 어땠을지 끔찍할 정도..

 

 

(현지피해상황..근데 어느 나라든 학교 가는 건 싫은가 보.)

 

한국에서도 겪지 않는 자연재해를, 필리핀에 와서 경험하다니..라며 혀를 끌끌 차던 내 과거가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저 멀리도 아니고….같은 도시에서 이렇게 다른 모습이라니..

 

우리 숙소는 바기오 시청 바로 뒤에 위치하고 있었고, 바기오 경찰청에서도 가까운 곳에 있었다. 시내 중에서도 초 중심에 해당하는지라 다행히 전기 라던지 인터넷 복구도 상당히 빠르게 진행될 수 있었다. 여기에 어찌나 감사하던지..

 

저지대에 사는 분들은 대부분 소득층이 낮은 사람들이라 현지 한인분들께서 여러가지로 모금 및 기부도 진행하고 있었다. 태풍이 가시고 나서 인터넷 및 교통편들이 원활해 지면서 각 그룹별고 옷이라던지, 식량을 준비해서 피해입은 분들께 보내기도 하는것 같았다. 아무래도 대학생들은 중간고사 기간이라 그런지 페이스북에서 수업재개 여부를 많이 물어봤는데 예민한듯한 느낌을 받기도 했다.  


 

(한국식당에서 시킨 불족발. 맥주와 먹으니 꿀맛!)

 

전기가 돌아왔다는 안도감과 함께 이것저것 태풍 때문에 미뤄뒀던 일들을 마무리하고 저녁에는 같은 건물 내 상주하고 있는 대학생 아이들과 함께 전기님 컴백기념파티를 하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이제 태풍이 물러갔다고 하니 작은 비가 몇 번 오겠거니 했고, 일도 마쳤겠다 새파랗고 청명한 하늘을 보며 이곳 저곳을 둘러봐야지 했었다.

 

하지만태풍의 위압감에 큰 긴장으로 보내던 날들이 지나가서 인지, 아니면 여러 날 동안 몸에 한기가 들어서인지나는 다음날부터 극심한 기침감기에 시달리게 된다..

 

참 파란만장한 여행이지 않은가..?

 

태풍후의 일상은 다음편에